Page 9 - 2019 한인총연합회 필리핀 한인 이주사 회보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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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제 외교계의 웅변가, 약소국을 대변하다.
카를로스. P. 로물로
2차 대전이 끝나면서 세
계는 냉전체제에 돌입했다.
전후 국제평화와 안전 유
지를 목적으로 UN을 설립
했지만, 회원국들은 미국을
축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
소련을 축으로 한 사회주의
진영으로 나뉘어 사사건건
충돌했다. 조선의 독립에
대해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
게 대립하자 필리핀 대표인
카를로스.P.로물로 외상은
이렇게 일갈했다.
“금일 조선은 세계에서
가장 불행한 국가의 하나이
다. 조선으로 말하면 마땅
히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
충분한 것이므로 미·소 양
당국은 가급적 속히 독립된
조선공화국을 인정할 방책
을 취할 것을 나는 요망하
는 바이다.”
1947년 10월 30일, 유엔
총회 정치위원회에서는 양
진영의 격론 끝에 조선에 유엔감시위원회를 파견하는 “본인은 깊은 관심을 갖고 한국혁명정부의 탄생을
결의안을 채택했다. 보아왔으며 이제 한국사태를 스스로 보고 이야기하기
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 출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. 본인은 한국의 신정부에
신의 필리핀 외상 카를로스 로물로는 당시 필리핀이 대해서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. 지금 말씀드릴 수 있
미국을 옹호하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종종 미국과 소련 는 것은 군사혁명의 장래는 군사정부지도자들이 서약
을 날카롭게 비판했다. 조국 필리핀이 오랫동안 스페 에 밝힌 것처럼 1963년에 민정으로 복귀할 것으로 생
인과 미국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의 경험 때 각한다는 것입니다.”
문이었을까. 로물로 외상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비 도착 당일, 로물로 대사는 외무부를 방문하고 이튿날
서구권과 약소국의 처지를 대변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 에는 판문점을 돌아봤다. 방한 3일째 되는 날, 오전 10
다. 시 청와대를 예방한 로물로 대사는 윤보선 대통령으로
“UN 헌장의 정신과 본보기를 보인 몇몇 나라처럼 부터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을 인정하는 문
고색창연한 식민지제도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라마 화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. 대통령과의 접견 시간은
지 않으며 만일 이것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유혈과 폭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. 10시 30분에는 국가 최고회
동이 있을 뿐일 것이다.” 의 박정희 의장을 만났으나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
카를로스. P. 로물로 외상은 1949년과 50년 유엔총 았고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다. 다시 청와대로 돌아온
회 의장으로 거듭 선출되었고 국제 외교계에서 그의 로물로 대사는 윤보선 대통령이 베푸는 오찬회에 참석
영향력은 날로 커졌다. 그 무렵, 한반도 상황을 우려하 했다.
고 있던 로물로 의장은 6.25 전쟁 발발소식이 전해지 로물로 대사는 기자회견에서 “한국 군사정부는 자
자 소련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즉시 총회를 열어 유 유세계 모든 국민의 주목의 대상이 되어있다”고 말하
엔군 참전안을 주도해 통과시켰다. 그의 조국 필리핀 고 “한국이 유엔에 가입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데
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3번째로 한반도에 파병했다. 오직 소련의 방해 때문에 이것이 저지되고 있다”며
로물로 의장은 훗날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“1950년 한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떠났다.
한국이 역경을 겪고 있을 때 나는 필리핀군의 한국파 국제정치무대의 거목으로 오랫동안 활약했던 로물로
병을 결정하는 데 힘썼고 또 이에 앞서 한국이 유엔에 전 외상은 UN 고문으로 활동하다가 1985년 12월 16
서 승인을 받았을 때 기뻤다.“라고 술회했다. 일,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. 한평생 역사의 소용돌이
1961년 12월 9일, 카를로스.P.로물로는 주미필리핀 속에서 탁월한 통찰력으로 자신의 주장을 폈던 카를로
대사 자격으로 처음 내한했다. 군사정부가 들어선 지 7 스.P.로물로는 그가 생전에 남긴 한 마디로 여전히 세
개월 남짓, 윤보선 대통령이 이름뿐인 자리를 지키고 계인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. ‘역사를 무시하는 사람
있었고 로물로 대사의 방한 목적은 알려지지 않았다. 은 역사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’
로물로 대사는 도착성명을 통해 한국에 온 이유를 밝 [대통령 기록관]
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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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진으로 보는 필리핀 한인 이주 발자취