Page 6 - 2019 한인총연합회 필리핀 한인 이주사 회보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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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산 안창호가 1주일동안 말을 타고 바기오를 방문함(자료제공: 독립기념관)
1929년 안창호가 필리핀을 방문하였을 때 그곳의 것은 더 어려웠다.
한인들이 52명이었다는 『신한민보』의 기사가 있 안창호는 케손(Quezon) 상원의장 등 유력인사들
다. 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좌절하고 만다. 하
1929년 2월, 도산(島山) 안창호(安昌浩)는 일제가 지만 필리핀에 ‘대한인국민회 필리핀지부’를 설립
목을 죄어 오던 상하이와 만주 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하는 등 부분적인 성과도 있었다.
독립운동 거점 개척을 시도했다. 안창호는 만주의 한 필리핀한인총연합회 초대 회장을 지낸 故 박윤화
인들을 필리핀으로 대규모 이주시킬 계획을 세우고 회장은 1946년 7월 대한인국민회 필리핀지방회 위
필리핀 이민국에 찾아갔다. “일본 여권을 갖고 와야 원장 당시 “재필 동포들은 비도比島 진출의 45
하고, 1인당 50원의 지참금을 가져와야 한다”는 것 년 장구한 역사” 라는 문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
이 필리핀 당국이 내건 조건. 당시 50원은 쌀 5가마 1900년경에 한인들이 필리핀에 거주하기 시작했다
값으로, 노동자 1명 월급이 쌀 한두 말에 불과했던 고 볼 수 있다.
것을 감안할 때 너무 큰돈이었고, 일본 여권을 얻는
도산 안창호 선생의 여권(자료제공: 독립기념관) 안창호 선생과 동서 김창세(자료제공: 독립기념관)
팍상한 폭포에서 배를 타는 안창호(자료제공: 독립기념관) 바기오 가는길(자료제공: 독립기념관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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